이란 여성 권리 향상을 위한 투쟁의 역사
#이란 히잡 반대 시위
이란에서 여성의 권리를 위한 투쟁의 역사는 오래전부터 지속되어왔다.
■ 팔라비 시대의 이란 여성의 권리 향상
이란 여성들은 팔라비 시대(1925-1979) 동안 상당한 발전을 이뤘다. 소녀와 소년 모두를 위한 교육은 무료였다. 1936년 이란 최초의 대학교인 테헤란 대학교가 개교했을 때 남녀 모두 입학이 가능했다. 또한 레자 샤 팔레비는 국가를 현대화하기 위해 "Kashf-e hijab"로 알려진 법령을 발표했다. 히잡과 차도르를 포함한 모든 이슬람 베일을 금지하는 법령이었다. 1963년 여성은 투표권을 획득하고, 의회에 출마했다. 가정보호법에 따라 여성은 이혼 청구권과 양육권을 얻었다. 남편은 더 이상 일방적으로 아내와 이혼하거나 자녀 양육권을 자동으로 얻을 수 없었다. 소녀의 결혼 연령이 13세에서 18세로 높아졌다. 그리고 남편이 두 번째 아내를 얻으려면 법원의 허가가 필요했다. 이란 혁명 직전인 1978년까지 22명의 여성 국회의원이 탄생했고, 333명의 여성 지방의원이 선출됐다. 대학생의 1/3은 여성이었고, 200만 명 이상의 여성이 일을 했고, 그중 약 15만 명이 공공부문에 종사했다. 샤의 통치 시대에 여성들은 이란 사회에 더 많이 참여하고, 대학에 다니고, 남성들과 어울리고, 서양식 옷을 입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히잡 금지는 종교계의 반대자들의 분노를 일으켰고, 많은 이란 여성들을 소외시켰다. 경찰은 여성의 베일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때로는 히잡을 착용한 여성을 구타하기도 했다. 1970년대 혁명 동안 히잡은 군주제에 반대하는 표시가 되었고, 많은 중산층 여성들은 히잡 착용에 대한 항의의 일환으로 자발적으로 히잡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팔라비 시대>
카자르 왕조 구인이던 레자 칸(레자 샤 팔라비)이 1921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뒤 1925년 왕위에 오르면서 팔라비 왕조가 시작되었다. 그 아들인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가 뒤를 이어 왕조를 이끌었으나 1979년 2월 11일 이란 혁명으로 퇴위하면서 팔라비 시대는 막을 내렸다.
■ 1979년 혁명과 여성 권리의 후퇴
1979년 혁명 후 등장한 신권정치는 50년 동안 진보한 여성의 권리를 후퇴시켰다. 해변과 스포츠는 성별로 구분되었고, 기혼 여성은 정규 학교에 다닐 수 없었으며, 여성은 판사가 될 수 없었다. 또한 일정 연령 이상의 모든 여성은 히잡을 착용해야 했다. 또한 여성들은 정부 직위에서 배제되었다. 또한 가족법이 개정되었다. 이로 인해 30여 년간 이란 여성들은 권리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고, 이란은 이슬람 국가 중 가장 역동적인 여성 운동을 하는 곳이 되었으며, 다양한 직업 분야에서 국제적인 인정을 받는 여성 운동가들이 탄생했다.
1979년 시작된 종교지도자의 신권정치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슬람 전통을 우선시하는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Ayatollah Ruhollah Khomeini)가 초반 10년을 집권하고,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Akbar Hashemi Rafsanjani), 모하마드 하타미(Mohammad Khatami), 마무드 아마디네자드(Mahmoud Ahmadinejad)를 거쳐 현재 에브라힘 라이시(Ebrahim Raisi)가 2021년부터 집권 중이다.
하타미 시대에는 친개혁 기조에 따라 소수의 여성을 저명한 직책에 임명하기도 했으며, 2004년에는 13명의 여성이 의회에 진출했다. 이는 혁명 이후 가장 많은 숫자였다. 하지만 호메이니를 절대적으로 신봉해온 혁명수비대 출신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시절 여성의 권리는 다시 억압되기 시작했다.
<1979년 이란 혁명>
친서방, 개발 독재 정책을 펼친 팔라비 2세에 대한 반발, 팔라비 왕가와 왕실을 지지하는 고위층 세력 등 일부 계층들이 부를 독점하여 점점 커진 빈부격차 등으로 1977년에 팔라비 왕조에 대한 시위가 발생했다. 이 시위는 세속적 요소와 종교적 요소가 합쳐져 점차 시민 저항 운동으로 발전했으며, 1978년 8월에는 파업과 시위로 전국이 마비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이 혁명으로 팔라비 왕조가 무너지고, 이슬람 종교 지도자인 호메이니가 권력을 잡게 되었다.
이 혁명은 이란 현대사에서 민중 투쟁으로 수천 년간 이어져온 군주제를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수립시킨 시민 혁명이라는 의의가 있다. 하지만, 공화제가 수립된 후 결과적으로 친팔라비 파, 좌파 인사가 탄압을 당하는 새로운 국가 폭력이 발생했으며, 종교 지도자의 신정 독재체제로서 아직까지 독재정치가 이어지고 있으며, 인권 탄압이 매우 심각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 주요 히잡 반대 시위
1979년 혁명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여성의 권리를 시위하기 위해 수천 명이 모였다. 이란의 청년들을 포함한 남성들도 여성의 권리가 무너지는 것에 항의하기 위해 나섰다.
2017년 비영리단체인 'My Stealthy Freedom'은 남성과 여성이 히잡 착용 의무화에 반대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흰색 히잡, 스카프 또는 팔찌를 착용하도록 하는 '화이트 웬즈데이' 운동을 시작했다. 2017년 12월 Vida Movahed는 테헤란의 한 거리의 플랫폼 위에서 히잡을 쓰지 않고 서서 강제 히잡 착용에 항의하기 위해 흰색 스카프를 들어 올렸다. 경찰은 그녀를 현장에서 체포했다. 그녀의 사진과 영상이 퍼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소셜미디어에서 #GrilsofRevolutionStreet 해쉬태그 운동을 촉발했다.
2022년 9일 Mahsa Amini의 죽음은 또다시 전 세계적으로 분노를 일으켰고, 이란의 히잡 반대 운동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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